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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e 4

  모든 인간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이 주거기본법에 명시된 주거권의 정의다.

  주거 공간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엄이 침해받을 위기에 처한다. 우리나라는 그 위기의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을 주거취약계층이라 규정하는데 △쪽방 △고시원(여인숙)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 등에 거주하는 자부터 주거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자와 범죄 피해자 등을 포함한다.

  이에 본지는 주거 측면에서 기후 위기의 불평등성이 작용하는 방식을 알아보고 부산시 내 주거취약계층과 지원 인력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기후위기는
어떻게 약자의 터전을
파괴하는가

0. 노동이 고될수록
주거 피해도 커진다?

    기후 재난의 불평등성은 피해 정도와 대응·복구 능력 차이에서 드러난다. 부유층들의 피해는 거의 재산 손실로 그치지만 저소득층에선 매년 사상자가 생긴다. 재난 정보를 빠르게 알지 못하는 디지털 취약계층이나 거동이 불편해 빠른 대피가 불가한 노약자는 대응 측면에서 불리하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을 겪는 저소득층은 주거 피해를 복구할 여유가 없다. 기후 재난은 여러 신체적 상해를 동반하기도 하는데 육체노동 비율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상해는 노동 수단의 상실과도 같다.

* 다만 여기서 언급하는 디지털 취약계층과 노약자는 모두 부유층이 아니라는 조건이다.

현대 사회의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일대일 비교가 불가능하다. 자본의 패러다임이 타 조건보다 우세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집이 ‘집’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도 많다.

창문이 없어 여름마다 찜통이 되거나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나 한파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그렇다. 이미 일상의 하중이 과한 저소득층은 집을 보수하거나 옮기는 대신 자신을 그곳에 맞춘다. 이런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약자의 터전은 파괴된다.

  따라서 기후 위기 속 주거 문제는 필연적으로 △노동 △건축 △환경 △정치 등 다방면의 측면에서 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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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부산역 노숙인,

극한 기후에 무감각해지다.

길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제대로 된 주거 공간 없이 기후 위기에 그대로 노출된다. 지난달 12일(화)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듣기 위해 부산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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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 노숙인과 인터뷰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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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 놓여있는 노숙인의 짐

노숙인 A씨 (의령·70대)

Q. 노숙 기간이 얼마나 되나.

​A. 부산역에서 노숙한 지 50년이 넘어간다.

20대 후반에 크게 돈을 잃어 노숙을 시작했다.

Q. 노숙을 하면서도 계속 일을 했나.

A. 평생 막노동을 뛰었다. 인력사무소에 가면

현장직 자리를 알려준다. 이젠 늙어서 잘 안 써준다.

Q. 번 돈으로 방은 안 구해봤나.

A. 예전엔 고시원 같은 데도 가봤다. 그런데 방은 답답해서 못 살겠더라. 바람도 잘 안 통하고 보증금도 내야 한다. 부산역은 아무 데나 누워 잘 수 있어서 편하다. 지하상가에서도 잔다. 그리고 초량동에 빈집이 많다. 거기에 이불이나 패딩 같은 짐들이 있다.

Q. 이번 여름 많이 더웠는데 어떻게 지냈나.

A. 여름에는 더워서 밖에 나와 앉아 있는다. (안에 에어컨 나오는데 왜? 그래도 밖이 낫다.) 사실 젊을 때나 힘들었지 이제 딱히 힘든 건 없다. 지금은 달마다 기초생활수급비 받으며 산다. 난 주민등록증도 있고 행정복지센터도 찾아가니까 가능한 거다. 이런 거 귀찮아하는 사람들은 일도 안 하고 지원도 못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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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지원 봉사를 하는 교회연합단체

독거노인과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모습

현재 부산시에는 노숙인 지원을 위한 △자활시설 3개소 △종합지원센터 3개소 △응급잠자리 1개소가 있다. 그중 자활시설 ‘다이룸자활센터’에 실무자로서 느끼는 점들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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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룸자활센터 전태현 담당자]

​기후 위기에 따른 어려움은 환경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자활이 가능한 노숙인들은 대부분 일용직 근로를 하고 있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지속적인 근로에 어려움이 있다. 근로의 지속성이 낮아지면서 수입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생활이 점점 어려워진다.

노숙인의 생활 안정을 위한 임시 거주지 제공과 안정적인 근로환경 제공이 가장 필요하다.

02.

동구 쪽방촌 주민,

5년째 이어지는 희망고문.

  동구·진구 쪽방촌은 부산 내 열악한 주거 단지다. 2020년 9월 국토교통부는 ‘부산 동구 주거취약지 도시재생방안’을 발표하며 동구 좌천역 인근 쪽방촌에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주거환경개선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의 융합으로 △공공주택 425호 공급 △2018년 폐교된 좌천초등학교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 △빈집과 나대지를 소공원 및 쉼터로 조성 등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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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청

부산진역

초량역

부산역

​좌천역

범일역

1단계

2단계

단독주택 쪽방

밀집구역

비주택 쪽방

​밀집구역

북항

▲부산 동구 쪽방 단계적 정비 

참고: 국토교통부 / 제작: 부경대신문 

  2025년 입주를 목표로 했던 이 사업은 여전히 시작이 미뤄지고 있다. 사업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업 대상 지역인 주거취약지역 1만7000㎡ 중 천여㎡가 봉생병원 소유다. 봉생병원은 사업 시행자인 토지주택공사LH(이하 LH)에 공익사업으로 인해 토지를 잃은 소유자에게 동일한 용도와 면적의 다른 토지를 제공하는 대토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LH는 봉생병원은 법인이라 「토지보상법 제78조」에 따른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는 자(이주대책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이런 대립 속 쪽방촌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흙집들이 가까이 붙어 있어 화재 위험도가 높고 기본적인 생활 시설 자체가 취약하다. 기업 간 이권 대립 때문에 정부의 사업 추진을 믿었던 주민들만 몇 년째 고통받고 있다. 바뀔 수 있다는 희망에 쉽사리 떠나지도 못한다.

이미지 제공: Andrew George

03.

독거노인 지원,

단기성 복지에 치중되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산시는 2024년 기준 전체 일반가구 중 혼자 살고 있는 노인가구의 비율이 12.7%로 17개의 행정구역 중 5위를 차지한다. 

  부산시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김민주 사회복지사는 “2020년도부터 국가 차원으로 노인돌봄맞춤서비스(이하 서비스)를 진행 중”이라며 “현재 부산시 내 45개의 수행기관(복지관, 자활센터 등)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비스를 지원받는 독거노인은 2024년 기준 36,529명이다. 서비스 예시로는 기상청 발 폭염 주의 경보가 뜨면 수행기관에서 기후위기취약계층 대상을 직접 찾아가 안보를 확인하는 일 등이 있다.

김 사회복지사는 “부산시에서도 지난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재해구호기금 8천만 원으로 △여름 이불(855세대) △여름 내의(1천640세대) △선풍기(364세대) 등 혹서기 대비 물품을 구매해 구·군 독거노인 보호사업 수행 인력을 통해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위 사례처럼 물품 지원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복지 사업(이하 현물성 지원)은

즉각적인 도움을 주되 장기적인 주거 개선 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주거취약계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이미지 제공: Hobi industri

04.

기후위기에 얽힌

주거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김혜미 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에게 묻다.

Q. 많은 지자체가 기후 위기에 대응해 시행하는 현물성 지원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잠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는 효과는 있겠지만, 예산을 그렇게 태워버리는 것에 분명한 문제가 있다. 이 기록적인 기후재난 앞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의 에너지 복지정책과 기후대응 정책이 필요하다.

Q. 기후위기 속 주거취약계층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A. 변화하는 기후에 충분히 적응하고 기후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주거정책과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파리의 ‘15분 도시’와 암스테르담의 ‘도넛 경제’ 같은 모델이 있다. 도시의 온도를 낮추면서도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마을을 만들려는 관점이 중요하다.

Q. 현재 정부·지자체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주거취약계층까지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보나?

A. 미흡하고, 대단히 부족하다.

소위 ‘에너지 복지’라고 불리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 중 60%가 ‘에너지 바우처 제공’에 사용된다. 그러나 이 에너지 바우처 사용은 해마다 사용률이 감소한다. 이유는 제도 자체가 가진 여러 허점과 공백에도 있지만, 당사자들이 살아가는 주거 공간 자체가 에너지 효율이 무척 낮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에너지 복지 정책이 되려면 저효율 에너지 개선 사업 등 주거개선 사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건축사들도 주거 공간 자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 대상을 공공기관에서 민간 공동주택(30세대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녹색건축물 사업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신축 건물의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는 것만큼 구축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노후화된 건축물의 단열, 설비 등의 성능을 개선해 냉난방 비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활동을 그린리모델링이라 부른다. 부산건축사협회는 2015년부터 매년 그린리모델링의 일종인 ‘하얀지붕 설치 지원사업’(이하 하얀지붕 사업)을 해오고 있다.

하얀지붕 사업 담당자 박중원 건축사에게 묻다.

Q. 하얀 지붕의 효과에 대해 설명해달라.

A. 하얀 지붕은 햇빛을 98% 이상 차단해 집 안 온도를 6~10도 이상 감소하는 효과를 낸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절약과 탄소 감축의 효과가 생긴다.

 

Q. 해당 사업은 어디를 대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A. 한 해에 약 30개소 건물에 진행되고 △경로당 △아동센터 △주거취약계층 주택 등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여기에 △부산시 △BNK부산은행 △노루페인트 등의 지원과 부산건축사협회 소속 건축사들의 봉사가 더해진다.

 

Q. 다른 지원 사업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는데.

A. 부산건축사협회는 1년에 1개소 정도 열악한 내부 환경을 리모델링하는 ‘건축사랑(건축士랑)프로젝트’를 실시한다. 부산국제건축대전에서 그린리모델링 관련 워크숍이나 특별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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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 좌천동에서 본 하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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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우암동에서 본 하얀지붕

  친환경 건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남향에 창이 마주 보고 있어 바람이 잘 통하고 단열이 잘 돼 냉·난방기구를 적게 틀어도 되는 집이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좁은 땅에 다세대를 지어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한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친환경 건물을 짓겠다는 건축주가 없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는 선진국과 부유층의 △투자 △경제 흐름 △자원 낭비 등에 의해 촉발됐기에 대응과 복구도 같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누구나 안정적이고 저렴한 주택에서 살 수 있는 집 걱정 없는 사회가 곧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다. 평등하지 않은 기후 위기는 빈부와 강약의 이치가 통하지 않는 공평한 파괴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은 곧 나의 생명권을 보장하게 된다.

​이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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